이돈순의 작업은 다채로운 시각문화의 영역 속에서 소재로서의 ‘꽃’의 표현에 담긴 상투적인 관념의 한계를 극복하고, 꽃과 식물의 생명 현상과 각각의 형상성에 깃든 회화적 변용 가능성에 주목함으로써 꽃과 일상(소리, 색채, 시간, 공간의 지각 등을 포함하는), 꽃과 사물(objects), 회화와 타 장르(사진, 설치, 음악 등)간의 결합을 통한 다양한 조형 세계를 탐구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꽃 이미지에 스피커를 장착하여 노래하는 꽃을 연출하기도 하고, 붓 대신 수많은 못과 나사의 집적만으로 꽃의 형상성을 구축해 나가는 노동집약적 회화를 구사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노동의 결과물(작품-오리지널)마저 디지털 이미지로 각색된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실험적 요소들과의 접촉·충돌이나 조형적 진화가 자연, 그 중에서도 꽃과 식물의 치열한 생존전략 및 그들의 생활사를 관통하는 일종의 ‘생명’ 현상과 다르지 않다고 이해한다
작가노트
“나는 꽃들의 생존전략에 깃든 유연한 자기 신축성에 주목한다. 꽃과...
“나는 꽃들의 생존전략에 깃든 유연한 자기 신축성에 주목한다. 꽃과 식물들의 자기 변용과 타자와의 적응방식은 현대미술의 변형·왜곡을 통한 생존전략, 즉 강력한 현실세계로부터 스스로의 진실과 자율성을 지켜가려는 역설적인 자기부정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동시에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현실의 단면을 재현하기 위해 추구되고 있는 자기 해체나 혹은 낯선 것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자기 정체성의 확대 방식과도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권력구조 속에 녹아 있는 성 정체성의 왜곡과 모순은 기실 꽃과 식물의 생활사를 통하여 훨씬 오랜 역사적 계보를 이룬다.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을 꾀기 위해 꿀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는 꽃이 있는가 하면,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하여 수꽃으로 있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암꽃으로 변하는 꽃이 있다. 심지어는 환경에 따라 성전환을 하는 꽃도 있다. 또한 꽃은 자기 자신과 전혀 다른 종, 이른바 벌과 나비 같은 곤충에서부터 조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들에 의존해 수분을 일으킨다. 이는 자신의 본질을 타성의 힘에 효율적으로 기탁함으로써 스스로의 성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최종적인 목적성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고도의 자기표현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다. 마치 예술이 풍부한 감동의 구현을 위하여 전의적(轉義的)인 수사에 조탁하듯, 꽃의 생명력은 벌과 나비라는 간접적 은유 속에 암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