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내러티브가 절제되어 있다는 면에서 장영숙의 작품은 회화의 경계를 유추하게 만든다. 회화의 특성은 삶과 사물의 다양한 관계들을 시각적 사건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작가의 주관적 상황을 개념적으로 주조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작품 속에 내재된 사건과 삶은 외형적 형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의미를 통해 성립되는 예술적 의식의 지평이다. 이런 면에서 의미의 근본을 추상하는 예술적 행위와 본질에 대한 접근은 삶과 사건들을 포괄하는 상황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배제한 상태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 된다.
장영숙의 작품에서 이미지의 의식(image conscious)에 관해 이야기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의식이 지향하는 특성은 삶의 다양한 상황들을 정제해 하나의 지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그런 의식의 형성을 삶의 근본적 질문에서 비롯되는 인식의 차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의미의 질서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장영숙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성은 예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전제를 가정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절제된 표현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적 의식의 표상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양태들에 대한 비반응적인 태도(non-responsiveness)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다양한 양태들을 자연의 파편적 이미지들을 통해 수집해 냄으로써, 표현을 최소화 시키면서도 의미를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적 자아의 심리적 욕구를 객관적 명상의 상황으로 변화시켜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 작가는 이미지의 주체가 아니라, 반사된 이미지들을 시각화시키거나, 혹은 반사를 매개하는 물(水) 자체를 주제화 시켰다. 그러나 작가는 물의 효용성과 기능적 측면이 아니라 물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상징적 의미들을 부각시킨다 - 일반적으로 물은 탄생과 죽음, 사랑과 욕망 등등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물을 그런 상징적 적극성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빗방울, 호수의 표면과 바닥에 고여 있는 물에 반사된 이미지 등, 우리 생활의 소소함을 통해 물이 가지고 있는 비본질적 특징 속에서 환기시켜 준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런 비본질적 특성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이런 이미지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것은 당연히 본질과 직관 등을 통해 서술될 수 있는 존재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존재는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지향하는 의식, 즉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이 된다. 작가에게 존재는 무거운 부피감을 지닌 의식의 덩어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거리감을 지닌 시각 같은 것이다. 그래서 존재는 의식의 절대적인 영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풀어헤쳐지는 불교적인 공안 같은 것이다. 존재의 가벼움을 지향하는 현대인의 의식상태가 아니라 삶의 자유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식의 지향인 것이다.
맹자의 말처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만 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움이 우리 인간의 의식과 삶의 형식적 질서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인간 삶의 방향에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장영숙의 작품들은 이 같은 실천적 특성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런 실천들은 거대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들이 아니라 인간적 삶의 중요한 계기들을 담아내고자 하는 예술적 태도이자 미학적 실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품에서 의식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를 담고 있는 작가의 마음인 것이다. (글. 정용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