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칼날 흔적이 드러나기 직전의 흰 종이 공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비어있음 혹은 가득 참 속으로 선긋기 행위가 파고들고, 휩쓸려 들어간다. 작가의 신체와 정신의 합일점인 선긋기는 이 흰 공간의 탐색으로부터 시작된다. 날이 선 커터를 거머쥔 손등 위로 도드라진 새파란 동맥을 따라 전율하는 침묵의 선율, 이 보이지 않는 조직망이 종이-재료 위로 번질 때 작가의 손가락 아래서 무생물 재질이 숨 쉬는 마티에르로 변하고, 표면은 신경조직이 살아있는 표피(epidermis)로 변모한다. 이남미에게 이 표면은 하나의 마티에르, 정신으로 승화될 물질, 티 없이 무구한(immaculate) 공간이다.
장지를 단 칼에 가르는 행위는 단숨에 표면 아래 음각적 공간을 연다. 또한 겹겹이 쌓이는 표면의 층은 상호침투하기도, 서로 반목하며 떨어지기도 하면서 그림자를 뚜렷이 드리우고, 이 모든 것이 화면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출해낸다. 표면층이 엇비슷하게 갈라지고 겹쳐지면서 형성되는 선들의 방향성은 화면 공간의 확장을 가져오는 동시에 화면을 미로처럼 만들면서 이 움직임의 느낌을 한층 강화시킨다. 재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평면과 입체의 합일점을 추구하는 이남미의 공간감각은 일찍이 폰타나(L. Fontana)가 캔버스를 물질로 인식하여 그것을 실제로 가르고 구멍을 뚫는 행위를 통해 공간변용에 대한 실험을 하며 우주적인 공간과 우주적인 에너지를 찾았던 예를 상기시킨다.
이처럼 이남미는 주저함 없이 단숨에 긋는 종이 자르기 행위를 통해 수묵화의 진수인 일획의 묘미를 독특하게 구현해낸다. 또한 신체의 직접적인 투입을 통해 일획을 긋는 것, 즉 종이를 자르는 행위는 응축된 시간을 가시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획이 그어지는 순간 작가의 두 호흡 사이에 멈춰버린 이 시간은, 베르그송(H. Bergson)이 말한, 물리적 시간의 한계성을 벗어나는 진정한 의식의 시간인 ‘지속’(durée)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이 시간의 멈춤-확장에서 작가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종이를 자르는 파괴적인 행위의 이면엔 전통의 무게를 파기하고 동서양 회화의 융합을 시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화면의 피부를 가르는 아픔을 통해 물질 속으로 스며드는 정신, 이를 통해 비로소 정신은 마티에르 안에서 형태를 찾고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에게 종이 자르기는 문화적 뿌리내리기의 상징이다. 종이 자르기는 작가가 이미 구축한 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종의 탯줄 자르기와 같은 것으로서, 이를 통해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물리치려고 한다.
이남미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흰 모노크롬에서 출발한 화면은 현악기의 날카로운 선율을 연상시키는 색선을 도입하는데, 화면에서 이 색선은 섬광, 창조의 계시처럼 나타난다. 한편 직선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곡선은 질서정연한 기하학적 구성에 유기적인 활력을 더하려는 시도인 듯하다. 흰 공간이 초월의지를 반영하는 빛으로 충만한 공간이라면, 검은 공간은 감추어진 실체, 즉 드러나지 않는 자아의 표상일 수 있다. 앞으로 이 젊은 작가는 그가 추구하는 새로운 공간의 창조를 위해 화면 공간에만 국한된 공간개념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화면이 위치할 공간과 화면 공간 사이의 관계, 전시 공간에서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교류하는 화면들, 그리고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넓은 의미의 공간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비로소 공간 개념의 확장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공간은 꽉 채워있음과 텅 비어있음, 안과 밖,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변증법적 연속선상에서 탐구되어야 할 대상이다. 공간은 또한 우리의 의식을 늘 지배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과의 불가분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가는 한정된 그림 공간을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되는 무한한 창조의 세계로 만들면서 정체성 찾기, 즉 문화적 뿌리내리기를 실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소영 (미술비평)
전시개요
맥향화랑 개관 30주년 기념 三人行 二部展에 젊은 여성작가 세 사람 連...
맥향화랑 개관 30주년 기념 三人行 二部展에 젊은 여성작가 세 사람 連作展을 초대하였습니다.
근자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서인지, 사회제분야에 여성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중에도 미술계에선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남성보다 더 두드러져 보이고 있습니다. 이곳 대구지역에서도 여성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바, 이들 중 이번 기회에 초대받은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통예술개념에 얽매이지 않은 비형상적인 미술들입니다.
이남미의 “材料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전통적인 한국화 작가들의 話頭인 “繪畵分割이나 대상의 空間布置”의 기본적인 개념에서 한걸음 나아가 종이가 갖고 있는 종이 자체의 物性을 어떻게 새롭게 인식하는가? 에서 출발한 그녀의 材料에 대한 인식은 - 서구현대미술의 새로운 개념인 화면 자체의 물질적 인식을 깨뜨리고 물리적 변용을 가한 뒤, 화면 스스로가 드러내는 모습; 즉 L-Fontana의 적극적이면서도 과감한 의지와 一脈하고 있다. 오랜 長考 끝에 붓 아닌 예리한 칼로써 화면을 갈라내는 단호함에 의해 종이 자체의 物性이 가감 없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부드러움의 표상이 되는 종이의 물질성이 이토록 예리하고 섬찍할 수 있다는 새로움을 觀者에게 보여주고 있다. 고요함과 적막감만이 깃든 종이화면을 섬찍하게 갈라내는 一刀揮之의 화면은 Jascha Heifetz의 칼날 같은 Violin 선율이 고막을 때리듯이 다가선다. 이러한 새로운 물질인식과 공간인식은 무한한 창조적인 힘을 갖고서 이 작가의 창조적인 나아감에 一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