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 알프레드 바는 추상회화의 세계를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의한 바 있다.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성을 지닌 존재가 되었을 때 진정한 ‘추상미술’이라고. 이 말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추상은 어떠한 관념에서도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표현이야말로 추상회화의 자율성을 지닌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추상’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칸딘스키가 인간의 내적 필연성인 정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추상회화가 필연적이라고 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박명숙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무엇보다 그룹전을 시작으로 1989년서부터 해온 작업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화단의 데뷔전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첫 번째 개인전이지만 구상세계가 아니라 차원 높은 추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명숙 그림들의 출발은 우주이다. 그 우주는 우리가 쉽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망원경을 보고 그리는 풍경은 더욱 아니다. 1969년 암스트롱이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 착륙하는 풍경을 텔레비전으로 보았을 때를 그는 잊지 못하고 회상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인 그 때 어린 마음에 우주에 대한 깊은 환상을 가졌다고 한다.
박명숙은 그 때의 풍경을 그림 속에 담아낸다. 그는 그러한 기억과 환영을 글과 그림으로 남기기를 원했고 바로 이번 전시는 그러한 그의 오랜 추억을 뒤돌아보는 향수와 환영의 가슴 떨리는 기록이다. 그의 화면에는 구체적인 형상이 없다. 물론 초기 그가 그림을 수학하는 시절 그도 예외 없이 자연과 풍경 등 구상적인 세계의 과정을 담아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형태가 갖는 고정된 관념이나 형태의 어압에서 벗어나 인간의 꿈이 형상화되고 이루어지는 순수성의 세계를 지향한다. 사진으로 본 환상적인 우주의 모습은 그 자체가 바로 추상이다. 또한 색으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빛들이 연출해내는 풍경들은 그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순도 높은 환타지이다.
그는 그러한 비장형의 세계에서 뜨거운 추상의 세계를 이끌어낸다. 주지하다시피 박명숙의 화면은 청색이나 붉은 색등 세련된 색채들이 서로 부딪치며 하나의 은하 집단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구상성 있는 형태를 간혹 보여주지만 색채들을 사이에 두고 가장 순수한 상태로 이끌려 모든 색채들이 화폭에서 하나로 이루어지는 금욕적인 추상의 영역에 도달하고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박명숙은 우주의 모습을 소재로 한 추상회화를 전개하면서도 끊임없이 어린 날의 기억과 환상속의 이미지들을 탐색한다. 그리하여 그의 추상회화는 대상에 의존한 자연주의 화풍이나 상상의 세계를 뛰어넘는 독특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박명숙의 이 순순한 내면의 이미지와 우주의 풍경은 다분히 경험적인 영역이라기보다는 막연한 우주의 동경이라는 사춘기적 감성의 표출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내면에 의지와 색채의 표출 언제나 그가 가지는 소녀적이고 순결한 감성의 뜨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색채들은 가만히 들여 다 보면 동일한 색채가 없듯이 또한 동일한 구성도 없으며 그는 철저하게 내면의 감정에서 자라나는 그 느낌과 인상을 화폭에 충전해둔다.
그의 화폭은 그래서 추상성으로 가득 차 우리의 기억과 환영을 가장 순수한 울림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박명숙의 기본적인 조형요소는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있다. 마찬가지로 단순화된 기본적인 색채의 분위기에서도 그만이 바라보고 있는 우주의 질서가 있다. 균형 잡힌 색채와 형태들은 적절한 모양을 기본 바탕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추상은 다른 무언의 이미지들로 침묵한다. 그는 자신의 추상적 탐구에 있어 감성을 회화에서 절대적 우위에 두고 있다.
박명숙은 예술에 있어 절대적인 것은 순수한 감성으로 이루어지며, 눈에 보이는 외계의 현상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표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색채와 기억 그리고 기억속의 색채들로 보 수 없는 우주의 파노라마가 가능하다.
박명숙의 그림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형상들이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우리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회화의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때로 그러한 풍경은 거의 무의식 세계에서처럼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추상의 물결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동시에 추상회화의 작가들이 이러한 감성의 교훈을 물려받으면서 만들어놓은 수많은 별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박명숙의 회화는 이제 궁극적으로 순수의식의 드러냄이라는 추상에 가깝게 닿아있다. 그의 화면에 살아나는 색채들의 구성미와 빛의 부딪침과 굴절에 의해 생성되는 색채의 신비들이 달나라에, 아니 우주에 머무는 것처럼ㅁ 빛을 내고 있다.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박명숙의 별들은 색채 전체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내면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은하계의 작은 우주를 우리들 가슴에 가득 채운다. 박명숙 그림의 진정한 즐거움은 그가 우리들을 갈 수 없는 또 다른 우주의 색채 속으로 안내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