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연상시키는 대형 화폭을 가득 채운 확대된 얼굴을 극사실 기법으로 그려온 서양화가 강형구씨가 부산지역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롯데화랑과 부산해양자연사 박물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머리카락 한올 한올, 땀구멍 하나까지 치밀하게 표현한 대형 얼굴그림과 국내외 유명인사 100여명의 캐리커처 작품을 각각 선보인다.

롯데화랑에서 선보이는 극사실주의 작품들은 200호(259X193㎝) 크기의 대형 화폭에 사진을 연상시키는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된 얼굴 초상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얼굴 작가로 널리 알려진 그가 안면초상을 고집해 온 이유는 그려진 얼굴들이 단순한 초상의 기능을 떠나 인간의 내면과 나아가 세상사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그려진 얼굴 그림을 통해 우리는 희로 애락의 감정과 세월의 흐름, 시대의 상징성 등을 읽어볼 수 있다. 특히 얼굴의 정면을 그림으로써 관람객과 그림 속의 얼굴이 마주보게 하여 교감을 직접화시키고, 어쩌면 그림 속의 얼굴이 오히려 관람객을 응시하는 듯한 착각마저 자아낸다. 작가는 평소 얼굴이 실물 크기 아니면 그보다 훨씬 작은 사진들에 익숙해져 있어 인간의 섬세한 내면성을 놓쳐버리기 쉽다고 판단하고, '확대'라는 방법을 동원해 얼굴의 예민한 표정을 정지화면으로 고정시키고 극사실 기법의 표현하여 노출을 극대화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광기 어린 표정의 천재 미술가 달리와 사진과 그림으로 익숙한 고흐, 링컨, 케네디 이외에 내면의 다양한 표정을 드러낸 자화상 인물들이 등장한다.

부산해양자연사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선보이는 캐리커쳐 작품들은 우리나라 전·현직 대통령들의 얼굴을 점토로 빚은 입체 커리커처를 비롯하여 문화계와 스포츠계, 연예계 인사들의 익숙한 모습들이 인물의 외형적 특징은 물론 사상, 시대적 상황, 매 순간의 감정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포착되어 있다.
노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광대뼈 위로 가늘게 뜬 눈, 보일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캐리커처는 한 마디로 어쩔 수 없는 분노 그 자체로 읽힌다. 두 눈을 내리 감고 이를 악문 듯 굳게 다문 입술을 앞으로 쑥 내밀고 있는 표정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되씹고 있는 듯하다. 대조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눈가에 주름이 접힌 채 이빨을 드러내고 능청스럽게 웃는 얼굴이다. 눈을 꼭 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캐리커처는 입, 턱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세상에 대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개인의 욕구, 그리고 욕망의 좌절에 따른 심술을 보여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늘게 뜬 눈에 두툼한 입술, 처진 볼살이 정치 인생에 대한 회한을 보여주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선을 약간 위로 향한 채 이마의 주름 위로 머리칼이 곤두선 모습으로 아직 뚝심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 강씨는 커피를 염료로 써서 채색하고 등신대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부를 과감히 생략하는 기법으로 대상 인물의 특징을 잡아냈다. 과장 자체를 생명으로 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캐리커처만큼 솔직하게 인물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도 없다. 그는 지점토 캐리커처 50여점 이외에도 평면 캐리커처 100여 점을 출품한다. 간디부터 소피아로렌, 후세인부터 이천수까지 국내외 정치인, 종교지도자, 연예인, 스포츠스타, 경제인, 작가 등이 망라됐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희원 큐레이터는 사진과 같이 정밀하게 표현한 극사실주의 작품이 과도한확대와 고도의 정밀화로 인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드러나고 과감한 과장과 왜곡을 통해 인물의 내면 심리를 포착한 캐리커쳐 작품이 오히려 그 인물의 실재감과 특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그림을 보는 재미와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